[책세상] '집'… 철학으로 만들었다
대문 마당 우물 마루 변소 울타리…
"그곳은 '사람이 존재하던' 아름다운 곳"
이 같은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글 많이 쓰기로 소문난 사진작가 이지누가 민속학에 기대고,인문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집 이야기'(삼인/류충렬 그림/1만2천원)를 내놨다. 아파트 평수 늘리기가 우스워지는 이야기 하나. 조선시대 판서를 지낸 홍귀달은 집이 무려 구백구십아홉 칸이나 된다는 소문이 났다. 호기심에 집구경을 가본 사람은 그의 볼썽사나운 단칸짜리 초막에 놀라곤 했다. 홍귀달은 느긋하게 "눈감고 누워서 구백구십아홉 칸의 생각을 해도 이 단칸방 하나 못채우는데 무슨 욕심을 더 낸다 말이오"라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규격화·표준화된 집에서 살게 되며 집주인의 생각은 사라지고 오히려 집에 생각을 맞추면서 살게 되었다.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은이는 옛 생각이 나기 시작하는 요즘에 들어서야 어른들의 집 가꾸기가 곧 사람 가꾸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이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 집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기능성과 편리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된 오늘날의 집에 대한 준열한 성찰을 하고 있다. 예전의 집에는 대문,울타리,변소,마당,지붕,우물,부엌,마루,창문,구들이 있었고 골목과도 바로 연결되었다. 옆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전에는 옆집 감나무에 주렁주렁 잘 달린 홍시가 우리 집 마당으로 넘어오는 일도 있었지만 이젠 감나무도,그것이 넘어올 울타리마저도 없어졌다.
한 밤중의 변소 앞에서 겁먹은 동생을 위해 지켜주던 형도 그리워진다. 자그마한 뒷간에 다시 쭈그려 앉고 싶지만 이제 우리가 앉을 곳은 없다. 파란 손과 빨간 손 귀신,변소각시와 한번쯤 더 만나 보고 싶지만 이제는 그들은 사라지고 물세례를 퍼붓고 이내 사라지는 비데귀신만 있다고 지은이는 쓸쓸해 한다.
예전의 마루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조차 자연을 포기하지 않는 지혜의 소산이었다. 베란다를 유리로 막아두면 베란다 공간만큼 소유하지만 그것을 열어두면 멀리 보이는 앞산까지 자신의 것이 된다. 사람의 기운이 빠진 빈집은 제법 먼 곳에서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천방지축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도 블록으로 담을 쌓고 뾰족한 쇠막대가 담 끝에 박혀 있거나 소주병을 깨뜨려 박아 놓은 집 아이하고는 친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집들은 아이들에게 친구를 빼앗아간 게 아닌가.
우물이 그리워지는 것은 돈을 내고 물을 사먹게 된 현실이 안타까워서이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든 생수를 가지고 다니며 마시게 된 것은 곧 우리들이 물을 함부로 다뤘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지은이가 보기에 집이란 목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이 집이다. 하지만 집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삽화를 그린 류충렬의 그림도 따뜻하고 어른들이 들려주었던 집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박종호기자 nleader@busanilbo.com |